우리술 이야기

“우리나라에는 지방의 특색과
특산물에 따라
수많은
우리술이 있었습니다.”
우리술이 태동한 삼국시대부터 우리나라 술의 3대 기준인
탁주·청주(약주)·소주의
기틀을 마련한 고려시대를 거쳐, 
가양주를 꽃 피운 조선시대에는 우리술의 전성기라고
불릴
정도로 다양한 우리술이 존재했습니다.



집에서 직접 빚은 술로 손님·이웃·가족과 어우러져 풍류를
즐긴 ‘가양주’ 문화의
발달로 문헌 속에만 남겨지고,  잊혀진
조선시대 술의 종류만 무려 600여 종에 달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1905년 을사늑약 강제 체결,  1909년 주류를
세금원으로 규정한
조선총독부의 주세령 시행 등으로 인해
가양주에 뿌리를 둔
우리술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1965년에 시행된 양곡보호령으로 인해 쌀을 주재료로 빚던
우리술은 차츰 자취를 감추게 되었으며, 
남겨진 우리술은
약 40여종에도 못 미치게 되었습니다.



잊혀가던 우리술에 대한 관심은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점차 증가하여,
1992년에
탄생한 우리나라 대표 약주 ‘백세주’를 중심으로
다시금 조명 받게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현대적인 주류 트렌드와 접목한 다양한 스타일의
전통주가 등장하며,
새로운 우리술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